드디어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게임을 1년 만에 할 수 있게 되었다.
1. 삼국지.
연의를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난 삼국지의 팬이라고 말하기가 두렵다. 자주 가는 사이트에 올라오는 삼국지 팬들의 글을 보면 얘들은 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의, 정사를 다 통독한 데다가 당시의 전투 상황 등까지 아주 세세한 글들을 보면, 난 그저 연의를 네댓 번 본 삼국지의 초입자 정도일 뿐.
2. KOEI 삼국지.
찾아보니 삼국지 1이 80년대 후반에 발매되었다고 한다. 기억에는 고등학교 때 사촌에게는 피씨가 있었고 그 집에 가면 사촌은 항상 삼국지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 삼국지로 인해 당시에는 아주 생소했던 터널 증후군이 생겼지만 오른손이 아프면 왼손이 역할을 다 한다며 왼손으로 마우스를 바꾸어 잡고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난 당시에는 컴퓨터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그 삼국지 2,3의 열풍을 비껴갈 수 있었다. 하지만 4,5 쯤에서는 한번 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리 깊이 빠지지는 않아서 유비로 한번 통일해 본 이후에는 게임을 지웠던 것 같다.
3. 토탈워 플랜차이즈.
2000년대 토털워라는 게임이 유명해진 것은 턴제 게임 방식에 실시간 전투를 추가했다는 것이다. 작은 전투병 한 명 한 명을 각각 보여주면서 싸우는 모습을 부대단위로 컨트롤할 수 있으니 그런 전투를 보는 게이머들이 얼마나 뿌듯할까... 처음에는 외면하다가 토털워 로마 2를 몇 번을 시도했는데 결국 제대로 못하고 지우다가는 작년 토털워 프랜차이즈가 삼국지를 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다시 깔고는 천천히 유럽을 통일해보았다. 하지만 작은 전투병 하나하나를 표현해야 하기에 내 랩탑에서는 실행이 불가능하고 새로 데탑을 사서 쓸만한 그래픽카드를 달아주어야만 삼국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로마 2로 만족해야 했다.
4. 데탑 구매.
드디어 데탑을 구매했는데 게임 값이 너무 비쌌다. 할만한 다른 게임들이 있어서 세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5. 여름방학 세일로 드디어 토털 워 - 삼국(삼탈워) 구매. 왜 이 나이 먹은 내가 여름방학을 기다려야 하는가. 그리고 2주간 미친 듯이 유비로 천하 통일. 조조로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6. 유비로 천하 통일.
이런 류의 게임이 그러하듯이 내가 한 작은 실수가 쌓여서 10 턴이 지나가고 나면 난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고 만다. 자주 저장했으면 10턴전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저장을 잘하는 편도 아니라서 20턴전으로 돌아가면 다시 하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몇 번 2~30 턴 진행하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시작했다. 공략은 안 보기로 했다.
6-1 처음에 도겸이 조조로부터 위기에 처했을 때 조조가 무서워 안 도와줬었다. 그러고 주변(도겸, 공융)이랑 사이좋게 동맹을 맺다 보니 황소를 잡은 이후에는 꽉 막혀 나갈 길이 없어져 포기하였다.
6-2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별일 없이 흐르다가 도겸이 갑자기 서주를 내게 주었다. 앗싸. 도와주는 게 맞는 거구나, 역시 사람은 베풀면서 살아야 해 라고 느낀 순간 조조가 쳐들어와 작살나버렸다.
6-3 공략을 따로 보지는 않았지만 오가며 읽은 글에서 서촉으로 들어가야 한다길래 열심히 뛰어서 형주를 지나다가 유표를 만나게 되고. 친하게 지내자길래 그러자 했더니 갑자기 유표의 속국이 돼버렸다. 짜증 나서 다시 시작.
6-4 처음에 짜증 나는 조조를 잡고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몇 번의 저장 끝에 잡았다.. 이후 원소와 공손찬이 서로 싸우길래 힘 빠지면 들어갈라고 했지만 둘은 결판이 안 나서 둘을 직접 정벌하였다. 원소야 당시에 가장 큰 세력이었으니 당연하지만, 공손찬도 뒤가 없어서인지 파워가 엄청났다. 원소야 결국 세상은 촉-오와 서량 세력인 양나라로 나누어짐. 양나라를 먼저 치고 오나라를 접수하여 삼국을 통일하고 잡다한 세력을 정리하였다. 문제는 이 잡다한 세력 정리가 의외로 오래 걸린다는 점.
7. 조조로 천하 통일.
이번에는 조조로 진군에서 장안까지 가서 동탁을 잡고 천자를 빼앗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위신이 낮아서 인지 천자는 바로 원소에게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서촉을 정리하고 거기서 힘을 길러 나옴. 세상은 오나라-송나라(원소 세력) - 그리고 위나라 이렇게 셋 남았는데 역시 원소부터 정리. 이번에는 외교를 통해 싸움도 붙이고 오나라에게 잘 보여서 원소를 치는 동안 공격 안 하게 붙잡아두기도 하고 잡다한 세력들은 속국-병합으로도 많이 해결해서 첫 번째 통일보다 더 빨리 해치웠다.
8. 손견으로 다시 할까 하다가 쉬어가기로 했다.
9. 느낀 점 들
9-1. 서기 190~250년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여성의 이야기는 별로 있지가 않다. 초선(아마도 연의의 창작일 듯), 대교, 소교, 손부인 등 다들 누군가의 부인일 뿐이다. 그게 지금 여성의 권위가 올라간 시점에서 보면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불편한 것과는 별개로 그냥 그랬던 것이다. 굳이 지금 만드는 게임에 여성들이 잔뜩 들어가는 것이 적절한 지 모르겠다. 첫 번째 천하 통일 때는 아무 모드도 안 썼더니, 유비로 시작한 내 게임은 처음으로 청혼을 해온 왕랑의 딸과 결혼해버리고는 유비는 나이가 들어 죽고 후사는 없어 군주는 왕부인이란다. 관우나 장비 모두 늙어 죽었고 제갈량과 조운은 살아있었는데 말이다. 내 아래 장수들의 반은 여성이다.
난 잘 모르겠다. 이렇게 여성들을 잔뜩 역사 시뮬레이션에 올리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것인지, 남성 게이머들의 눈요기를 위한 것인지. 아무튼 난 게임의 모양새가 실제 역사와 비슷했으면 한다.
9-2. 토털워라는 게임들이 그러하듯이 전투를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으며 컨트롤을 잘한다면 유관장으로 1당100이 되어 싸우기도 한단다. 난 그런 컨트롤을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약간 우세한 전투도 곧잘 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자동 전투 모드로 게임을 했다. 그러니 굳이 좋은 PC가 필요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경제가 있는 게임은 사실 전투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다. 즉 돈 많은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도시를 잘 꾸미고 내정을 잘해서 돈이 넉넉해야 군대도 많이 뽑을 수 있고 군대다 많으면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게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하다.
9-3 삼국지의 역사를 쭉 따라가는 모드가 있었으면 재미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관도 대전 같으면 당시의 원소와 조조의 위치가 정해지고 군사 수도 비슷하게 정해지고 주변 상황도 비슷하게 구현해놓고 전투를 하게 뜸한 그리고 그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으로 역사를 따라 진행하는. 굳이 컨트롤하거나 조정하지 않더라도 그냥 연의의 내용을 글과 함께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글로만 된 책을 읽어서 인지 관도가 어딘지 오소가 어딘지 그래서 어디서 어떻게 해서 이기게 되었는지 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만 해도 꽤 많은 사람들이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