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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진

사진, 기억 속으로 - 01

2019년, 새로운 사진기를 사며.

 

1991. 난 건축과에 들어갔다. 그곳이 뭘 하는 곳인지 내가 왜 거기를 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고, 당시에는 건축과가 꽤 인기 학과였다.

 

난 대학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내 선천적이 게으름이 첫 번째 문제였고, 손이 뇌를 따라가지 못하여 무엇을 그려도 예쁘지 않았고, 무엇을 만들어도 의도된 것과는 관련 없는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사진뿐이었다. 다행히 건축과 다니려면 필요하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나는 부모님의 금전적이 지원을 얻어 낼 수 있었고, 친했던 사진과에 다니는 친구의 도움으로 Nikon F601이라는 카메라에 35-70줌 렌즈를 살 수 있었다.

 

친구는 내게 필름 넣는법/빼는 법등을 알려주었고, 처음에는 P 모드로 반셔터로 초점을 잡은 후에 찍으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니 더 알려 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한 것은 그것뿐이었지만,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예술적인 우월감이 생겼고, 난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구매한 첫 날 친구가 찍어준 사진. 고마워서 내가 피자 샀다.
그해 가을쯤 찍은 사진.

(위의 두사진은 이미 한 번씩 포스팅함.

https://shoonie.tistory.com/entry/1991년-슈니?category=11683

https://shoonie.tistory.com/entry/%EC%98%A4%EB%9E%98%EB%90%9C-%EC%82%AC%EC%A7%84?category=11683)

 

하지만 카메라와는 별개로 난 대학 1학년을 엉망으로 마쳤고, 군대를 갈 수밖에 없었다.

전역 이후에는 그리 사진에 대한 열정이 생기지는 않았음에도, 건축과라 유럽 여행 갈 때는 슬라이드 필름을 몇십 통 사서는 정말 열심히 눌러댔다.

조별 발표때 준비한 슈트트가르트 미술관, 발표 이후에 한번 꼭 가보고 싶었다. 특히 저 구멍 뚫린 벽이 보고 싶었다.
수평이 안맞을지도 모르고 구도가 이상할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떠냐. 내 기억보다는 선명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