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음악, 게임, TV, 책 들

Death and the Maiden

이태원 살인사건이후 하나의 사건에 상반된 의견을 이야기하는 좋은 예가 있어서 다시 찾아 보았다.

불행히도 이영화는 우리나라에 '시고니위버의 진실'이라는 말도안되는 제목으로 개봉했다가는 금방 들어가버리고, DVD도 정식발매가 안되어 구하기 힘든 영화가 되어버렸지만, 로만 폴란스키라는 꽤나 유명한 감독이 만든 영화이며, 시고니위버보다 훨씬 더 유명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death and the maiden 이 그 제목이다.

나의 음악선생님중 한분인 조윤범(당연히 이분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 표현에 의하면 가장 유명한 현악 4 중주곡이라고 한다.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 찾아서 이영화를 찾아 볼것 같지도 않고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간단히 영화의 이야기를 하면,

독재정권이 끝난지 얼마 안되는 남미의 한나라에서과거 독재 정권당시 현재의 남편인 헤럴드의 이름을 말하지 않아서 전기고문과 성고문을 당해 그 기억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주인공 폴리나는 어느날 자신의 남편을 도와주러온 손님의 목소리만 듣고 그가 자신을 고문한 박사였음을 알아차린다. 그 박사는 고문을 할때, 위의 노래를 항상 틀어두었는데, 그녀가 그 손님의 차를 뒤져보니 그 음악의 테이프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차를 절벽에 밀어 버리고, 잠자고 있는 그 박사 미란다를 포박하고 총으로 그를 위협하며 고문의 죄를 고백받으려한다. 그러나, 미란다 박사는 자신이 그당시 유럽에 있었으며 자신은 그런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는 주인공 폴리나의 모습이 약간은 편집증적으로 보여지게 이야기한다. 고문당한 기억이 안스럽고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단지 10여년전의 목소리(고문당할때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었다.)와 유명한 현악 사중주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로는 미란다박사가 그사람이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증거가 부족하니까. 남편인 헤럴드는 그런 관객의 입장과 유사하다. 자신을 위해 고문을 받았던 아내가 굉장히 안스럽고 사랑하기에 지원해주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란다의 그런 고문을 했던 박사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헤럴드는 그외에도 일반인과 무척 닮아있다. 자신을 위해 아내가 고문받는 중간(물론 그때는 아내가 아니었다.) 에도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했으며, 막상 진실이 밝혀지면 분노하지만, 분노를 가지고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치 우리들 처럼 쉽게 분노하지만, 또 쉽게 망각하고, 어설픈 정의로움으로 진실을 덮어두기도 한다.

미란다박사는 나름 지성인이다. 헤럴드와 이야기할때 니체를 인용하기도 하고, 고문을 할때 치유효과를 주고자 슈베르트의 음악을 틀기도 한다. 아주 일반인이 권력을 가졌을때 그가 근본적으로 변태나 폭력적인 인간이 아닐지라도 얼마나 쉽게 폭력적이고 그런 학대를 즐길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후 그 역시 자신의 폭력으로 가득찬 기억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폴리나는 모든 사실을 듣자 그냥 뒤돌아 가버린다. 자신이 받은 폭력보다는 그런 사실이 자신의 남편에게서조차 인정되어지지 않는 것이 더 슬펐을 듯한 이여자는 모든 사실이 그저 '인정'된것만으로도 치유를 받은 것같다. 좋아했지만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어서 듣지 못했던 그음악을 이제는 콘서트에 가서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