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렛을 하나사서 이런글 쓸데 옆에 삽화라도 그려 넣고 싶지만, 읽는 사람들이 보면 뭐하러 타블렛까지 사가지고 이병맛같은 그림까지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까봐 포기한다.)
지난주 월요일이었다. 딸애는 며칠째 두통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내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아이의 시력을 체크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자야? 안보여? 이거는?"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져서 내가 그 시력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뭐해, 수빈이 일루와봐"
"저기 저글자 보여? 뭐라고 써있어?"
"d" .. "e" ...
오른쪽 눈의 시력이 거의 없다 시피할 정도로 눈이 안좋았다. 왼쪽도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고... 오른쪽 눈은 색깔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듯 했다.
갑자기 '홀랜드 오퍼스'가 생각이 났다. 물론 영화속에서는 청각이지만...
'내 아이가 시각장애아인가?'라는 생각이 들자 수만가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아이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데 어쩌지부터....
아내에게 왜 눈을 체크해봤는지를 물었다.
아내는 수빈이가 한눈을 가리고 엄마를 보면 엄마의 눈이 세개네게로 보인다고 그랬단다. 그래서 이것저것 체크해보게 되었다고...
애들을 재운후 우리부부는 서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걱정보다 한수 위였다. 그녀는 딸애가 걱정이 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뇌종양과 꽤나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두통에 갑작스런 시력저하....
사실 아내는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이 많은 편이라 신혼초에 갖은 첫애때부터 소아 의료 백과 사전을 늘상찾아보며 병을 키우기 일 이 흔했다. 대체적으로 나는 그 병을 무시하는 입장이었고.
'애들 때는 다그래'
물론 근거 없기는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측정해본 아이의 시각은 정말 정상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었고 눈이 그리 나빴던것을 여짓껏 몰랐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두통도 너무 자주 있는 듯 했다.
아내와 나는 아무말 없이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자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잠이 많은 나는 새벽에 잠이 들었지만 아내는 한숨도 못잔듯했다. 신파이기도 하고 드라마속에 자주 나타나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무엇을 상상할지 참 뻔하긴한데... 그래도 그 날밤 내머리속을 지나간 의문, 혹은 상상의 꼬리등은....
-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이기에 이런 시련이 내게 닦치나.
- 그게 왜 하필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우리딸에게 가나.
- 앞으로 어떻게 살지?
- 한국에 있었으면 안걸렸을텐데 내가 고집해서 여기왔기 때문 아닐까?
- 수많은 수술과 치료 약물등을 우리 아이가 견뎌낼 수 있을까?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뷰티풀 라이프'- 웃기는 건 희한하게도 남자 주인공의 입장이 아니라 아버지의 입장에서만 떠오른다. (더희한한것은 한국에서도 무지 많은 드라마에서 불치병을 이야기했지만 막상 기억나는 것은 없다. - 난 정말 친일파 아니다.)
- 한국에서 치료해야 하나 여기서 해야하나.
- 만약에 죽으면 난 어쩌나. 이쯤에서 눈물 한방울 주르륵.
...
다음날 휴가를 받아 응급실을 찾아갔다.
이곳의 응급실은 기다리는 것으로는 악명높다. 뭐 다리를 삔 아들을 12시간 기다려서 깁스 하고 오신 어머니도 알고 있고, 7~8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리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오후를 휴가로 다 빼 버렸다. 하지만 뇌종양 의심 소아의 경우는 예외였다. 응급실 의사가 들어와서 이것저것 문진 하더니 자기의 생각은 시력은 문제인것 같으니 안과 전문의를 만나 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CT를 찍어보자는 것이었고. 등록후 CT 촬영, 결과 설명까지 3시간 정도 걸렸다.응급실에서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빨리 처리를 해주니 너무 고마왔다. 당연히 결과는 뇌에 '이상없음' 이었다. 뭐 어려운 예측은 아니겠지 뇌에 이상있음 이었으면 여기에 글남기고 있는 여유로움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지만, 촬영결과가 아무 이상 없음 이라는 소식에 정말 눈물이 나올듯이 기뻤다.
우리가족은 외식을 했다. 맥주도 한 잔 곁들였고.
아내는 너무 피곤했는지 애들과 같이 자버렸다 (새벽에 애들이 자기를 꺠우면 곤란 하므로...)
그이후 안과 전문의를 두번 만났는데 시력이 weak 하단다. 안경을 쓰면 좋아 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안경을 맞쳐주러갔었다. 안경을 쓰고 다니다가 4월쯤 다시 보자고 한다. 안경을 써본 모습이 영마음에 안든다. 당연히 안경안쓰고 맨얼굴이 예쁜 우리공주가 안경을 써야 되는 것이 너무 속상하지만, 지난 밤의 고민을 생각해보면 이정도는 웃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산다. 공부도 잘해야 하고, 운동도 잘했으면 좋겠고, 악기도 하나 정도 잘다뤄야 폼도 날 것 같고. 똑똑해서 남들앞에서 이야기도 잘하고 남을 이끄는 아이였으면 좋겠고. 결국에는 커서 돈도 잘벌고 .....
글쎄. 난 이제 건강하기만을 바라기로 했다. 그런의미에서 그날 난 딸하나를 새로 얻은 셈이다. 물론 아내의 걱정에 같이 놀아난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어쩌면 내가 새로운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