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내게 대체적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영화처럼 분노하게 만들고 기분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영화가 우리에게는 너무 필요하며,
많은 사람이 봐야 할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속 한마디 하마디가 모두 구구절절 명대사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이다.
1. 우선. 지하철 '치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치한이라고 안하고 변태새끼라고 많이들 한다. 나도 가끔 전철에 타면 별 미친놈들을 다 본다. 굳이 여자를 만지지 않더라도 텐트치고 지꺼 만지는 놈들도 있고... 아내의 이야기나 다른 여직원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득찬 전철에서는 이리 저리 더듬는 놈도 참 많다고 한다. 그런면에서 아내나 젊은 여직원들이 참 안스럽고 남자인게 왠지 미안할때도 있다.
나야 만원전철을 탄일이 많지는 않고 남자이니 나를 더듬는 놈을 본적은 없지만. 만원전철에서 옆구리나 그위 쯤으로 여자의 가슴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기분이 무척 나쁘다. 그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면 남자가 그러면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천만에. 무척 불쾌하고 움츠려든다. 난 아마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옷을 찢더라도 뒤돌아 문쪽을 보고 섰을 것이다. 그리고 두손을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위로 들것이다. 실제로 만원 전철에서는 그렇게 한다.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하나 들고 음악을 고르며, 한손은 손잡이를 잡는다. 아마 한국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리 할 것이다. 의심받는게 싫어서이다. 나역시 여성이건 남성이건 내 몸에 닿는게 싫은데, 내가 만졌는니 어쨌는니 하며 오해 받는것은 무척이나 싫고, 단지 그이유가 내손이 내려가서이라면, 손을 올리고 말뿐이다. 역차별이니 어쩌니 해도 전철에 남자칸 여자칸 만들면 편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오해에 대한 고민은 없어질테니까. 하지만, 나도 남자이기에 멋진 옷을 입은 여자가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 탄 전철에 오른다면 시선이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만원 전철에서는 관심없다.
여름철이면, 전철역에서 나오는 계단을 오를때면 무척 불편하다.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데,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 엉덩이 아래쪽으로 핸드백을 대고 걸어올라간다. 그것도 잘 이해 할 수 없다. 내가 거울들이대고 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난 앞을 보고 갈 수 없고, 앞의 여자는 자기가 괜히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는 내가볼까봐 핸드백을 뒤에 대고 걸어가야 하는 상황...
난 남자이기때문에 잠재적인 성희롱, 혹은 성추행범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나역시 그런놈들을 무척이나 지저분하고 치사한 범죄자라고 생각함에도 나역시 그런인간일 수 도 있다는 의심을 받아야 되는 상황. 공평한가?
2. 재판.
최근 2~3년간 두건의 재판이 있었다. 한건은 형사재판이었고 난 증인 신분이었으며, 한건은 민사재판이고 난 원고 신분이었다. 두 건의 재판으로 내가 친한사람에게 해줄수 있는 나의 느낌은 재판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것이다. 카프카의 심판이라는 소설처럼, 난 깝깝함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게 내죄건 아니건 그게 정의건 아니건 그런것보다 빨리 이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난 죄를 짓지도 않았고, 피고 신분인적도 없는데,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받아 먹는 판사나, 검사가 왜 내위에 군림하여 나에게 윽박지르는지 모르겠고, 그들이 잘알지도 못하는 내상황을 왜 판단해야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민사건에대해서는 블로그에 많이 적어두었으니, 아는 사람들은 잘알겠지. 난 내 전세집을 비워준지 6개월이 다되었고 전세집을 비워줘야 한다고 말한지 1년이 넘었으며, 해야하는 법률적인 조치를 다 취했음에도 아직도 돈을 못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몇개월간은 돈을 받을 수 없을 것이고, 그동안의 이자 조차 한푼 못받는데, 판사라는 넘은 그런 고민들에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표정으로 이자는 받지 말라고 판결해버렸다. 피고인 신분으로 검사를 만났을때는 한번도 본적없는 놈이 반말찍찍하며, 윽박질렀다. 그때 나는 피고도 아니고 증인신분이었으며, 무엇인가를 도와주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 무죄 & 유죄.
영화로 돌아가서, 죄가 있다는 것이 그 증거로 명백하고, 본인도 인정하고 있는 경우야 뭐 딱히 할 말이 없다. 그 경우야 박식한 판사가 여짓껏까지의 판례를 들어 형을 선고하거나 형을 유예하면 되겠지. 하지만, 내가 하지 않았는데, 그 죄값을 치뤄야 할 경우가 발생한다면. 이건 정말 억울하다. 가네코의 말처럼.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것은 피고인 한사람뿐이다. 판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영화에서는 나름 그에게 유리한 증거가 많이 보여졌다. 그리 찾고자 하던 여자 증인도 결국 찾았으며, 재연비디오를 통해 여성피해자의 말에 오류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하지만, 그런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판사에게나 검사에게나, 99.9 %라는 기록이 있기에, 그냥 가네코가 범인이 되어버리면 '편리'하다. 그리고 굳이 무죄가 선고 된다고 하여도 그다음 재판에서 또다시 유죄가 선고 되어버릴 수있는 가능성 역시 99.9% 일테니. 거기에다가. 무죄를 주장하는 측은 힘들다. 변호사비용부터 재판비용,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다. 드러니 저러다 포기 해버리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속이어서이겠지만, 영화속 변호사들은 그래도 꽤나 좋은 사람들이다. 현실에서는 그런가? 돈만 밝히는 변호사가 훨씬 더 많다.
누군가 내 주위에 저런일이 벌어지면, 난 뭐라고 충고할까? 난 아마 첫번째 변호사처럼 충고할 것이다. 그만두고 그냥 인정해라.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너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 나를 욕할것인가? 아니 난 현명한 충고를 했을 뿐이다. 이미 우리사회나, 혹은 일본처럼 선진국의 사회조차도 정의를 이야기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4. 한동안 보스턴 리갈이라는 미국드라마를 본적이 있다. 드라마는 한 로펌을 중심으로 재판의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그 드라마가 제대로 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미국의 법률시스템은 그나마 우리나 일본보다는 나은듯 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국의 시스템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드라마를 쓰는 사람이나 감독이 그러기를 원하는 것이겠지.
5. 또하나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네 현실은 죄지은 사람이 벌을 안받는 경우도 허다 하다. 회사에서 조금 높은 사람이어도 벌을 안받고, 여럿을 쏴죽였어도 좋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온갖 편법을 저질러 돈을 모아도 그중 일부만 기증하면 그냥 넘어가며, 높은 사람이랑 잘알고 있으면 형집행이 연기되기도 하고. 그런거에 일침을 가하면 직업을 잃고 온갖 표적수사를 당하다가 찢겨지기일 수이니까.
6. 완벽한 세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남을 판단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나, 남을 보호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사람들이 조금더 완벽에 가까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세상을 정의롭게 만든다. 하지만, 어려서 부터 돈을 버는 게 최고의 가치로 알고 여러가지 편법을 동원하녀 그자리에 올라가 그것을 유지하고싶은 사람들이 남을 정의롭게 보호하려고 하거나, 남을 정의롭게 판단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 아닐까? 우리는 그리 정의롭지 못한 세상속에 살고 있으며, 그러기에 정의를 찾기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감수해야만 한다.
7. 늘 하는 말이지만, 언론이든 , 법조계이든, 정치인이든, 교육이든, 존재 목적이 '정의' 인 어느 한 단체만 정의로우면 세상은 꽤나 많이 정의롭꺼나, 정의로와 질텐데, 하나같이 썩어있으니....이런영화를 보며, 시티오브갓을 볼때처럼 '적어도 우리는 이런세상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아'라는 자위감이라도 생겼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작은 영화속에서 너무 많은 의미를 두었는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 ボクは やってない'라는 가네코의 말이 너무나 내귀에 크게 들린다.
하지만 가끔은 이영화처럼 분노하게 만들고 기분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영화가 우리에게는 너무 필요하며,
많은 사람이 봐야 할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속 한마디 하마디가 모두 구구절절 명대사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이다.
1. 우선. 지하철 '치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치한이라고 안하고 변태새끼라고 많이들 한다. 나도 가끔 전철에 타면 별 미친놈들을 다 본다. 굳이 여자를 만지지 않더라도 텐트치고 지꺼 만지는 놈들도 있고... 아내의 이야기나 다른 여직원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득찬 전철에서는 이리 저리 더듬는 놈도 참 많다고 한다. 그런면에서 아내나 젊은 여직원들이 참 안스럽고 남자인게 왠지 미안할때도 있다.
나야 만원전철을 탄일이 많지는 않고 남자이니 나를 더듬는 놈을 본적은 없지만. 만원전철에서 옆구리나 그위 쯤으로 여자의 가슴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기분이 무척 나쁘다. 그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면 남자가 그러면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천만에. 무척 불쾌하고 움츠려든다. 난 아마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옷을 찢더라도 뒤돌아 문쪽을 보고 섰을 것이다. 그리고 두손을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위로 들것이다. 실제로 만원 전철에서는 그렇게 한다.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하나 들고 음악을 고르며, 한손은 손잡이를 잡는다. 아마 한국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리 할 것이다. 의심받는게 싫어서이다. 나역시 여성이건 남성이건 내 몸에 닿는게 싫은데, 내가 만졌는니 어쨌는니 하며 오해 받는것은 무척이나 싫고, 단지 그이유가 내손이 내려가서이라면, 손을 올리고 말뿐이다. 역차별이니 어쩌니 해도 전철에 남자칸 여자칸 만들면 편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오해에 대한 고민은 없어질테니까. 하지만, 나도 남자이기에 멋진 옷을 입은 여자가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 탄 전철에 오른다면 시선이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만원 전철에서는 관심없다.
여름철이면, 전철역에서 나오는 계단을 오를때면 무척 불편하다.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데,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 엉덩이 아래쪽으로 핸드백을 대고 걸어올라간다. 그것도 잘 이해 할 수 없다. 내가 거울들이대고 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난 앞을 보고 갈 수 없고, 앞의 여자는 자기가 괜히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는 내가볼까봐 핸드백을 뒤에 대고 걸어가야 하는 상황...
난 남자이기때문에 잠재적인 성희롱, 혹은 성추행범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나역시 그런놈들을 무척이나 지저분하고 치사한 범죄자라고 생각함에도 나역시 그런인간일 수 도 있다는 의심을 받아야 되는 상황. 공평한가?
2. 재판.
최근 2~3년간 두건의 재판이 있었다. 한건은 형사재판이었고 난 증인 신분이었으며, 한건은 민사재판이고 난 원고 신분이었다. 두 건의 재판으로 내가 친한사람에게 해줄수 있는 나의 느낌은 재판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것이다. 카프카의 심판이라는 소설처럼, 난 깝깝함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게 내죄건 아니건 그게 정의건 아니건 그런것보다 빨리 이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난 죄를 짓지도 않았고, 피고 신분인적도 없는데,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받아 먹는 판사나, 검사가 왜 내위에 군림하여 나에게 윽박지르는지 모르겠고, 그들이 잘알지도 못하는 내상황을 왜 판단해야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민사건에대해서는 블로그에 많이 적어두었으니, 아는 사람들은 잘알겠지. 난 내 전세집을 비워준지 6개월이 다되었고 전세집을 비워줘야 한다고 말한지 1년이 넘었으며, 해야하는 법률적인 조치를 다 취했음에도 아직도 돈을 못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몇개월간은 돈을 받을 수 없을 것이고, 그동안의 이자 조차 한푼 못받는데, 판사라는 넘은 그런 고민들에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표정으로 이자는 받지 말라고 판결해버렸다. 피고인 신분으로 검사를 만났을때는 한번도 본적없는 놈이 반말찍찍하며, 윽박질렀다. 그때 나는 피고도 아니고 증인신분이었으며, 무엇인가를 도와주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 무죄 & 유죄.
영화로 돌아가서, 죄가 있다는 것이 그 증거로 명백하고, 본인도 인정하고 있는 경우야 뭐 딱히 할 말이 없다. 그 경우야 박식한 판사가 여짓껏까지의 판례를 들어 형을 선고하거나 형을 유예하면 되겠지. 하지만, 내가 하지 않았는데, 그 죄값을 치뤄야 할 경우가 발생한다면. 이건 정말 억울하다. 가네코의 말처럼.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것은 피고인 한사람뿐이다. 판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영화에서는 나름 그에게 유리한 증거가 많이 보여졌다. 그리 찾고자 하던 여자 증인도 결국 찾았으며, 재연비디오를 통해 여성피해자의 말에 오류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하지만, 그런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판사에게나 검사에게나, 99.9 %라는 기록이 있기에, 그냥 가네코가 범인이 되어버리면 '편리'하다. 그리고 굳이 무죄가 선고 된다고 하여도 그다음 재판에서 또다시 유죄가 선고 되어버릴 수있는 가능성 역시 99.9% 일테니. 거기에다가. 무죄를 주장하는 측은 힘들다. 변호사비용부터 재판비용,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다. 드러니 저러다 포기 해버리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속이어서이겠지만, 영화속 변호사들은 그래도 꽤나 좋은 사람들이다. 현실에서는 그런가? 돈만 밝히는 변호사가 훨씬 더 많다.
누군가 내 주위에 저런일이 벌어지면, 난 뭐라고 충고할까? 난 아마 첫번째 변호사처럼 충고할 것이다. 그만두고 그냥 인정해라.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너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 나를 욕할것인가? 아니 난 현명한 충고를 했을 뿐이다. 이미 우리사회나, 혹은 일본처럼 선진국의 사회조차도 정의를 이야기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4. 한동안 보스턴 리갈이라는 미국드라마를 본적이 있다. 드라마는 한 로펌을 중심으로 재판의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그 드라마가 제대로 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미국의 법률시스템은 그나마 우리나 일본보다는 나은듯 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국의 시스템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드라마를 쓰는 사람이나 감독이 그러기를 원하는 것이겠지.
5. 또하나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네 현실은 죄지은 사람이 벌을 안받는 경우도 허다 하다. 회사에서 조금 높은 사람이어도 벌을 안받고, 여럿을 쏴죽였어도 좋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온갖 편법을 저질러 돈을 모아도 그중 일부만 기증하면 그냥 넘어가며, 높은 사람이랑 잘알고 있으면 형집행이 연기되기도 하고. 그런거에 일침을 가하면 직업을 잃고 온갖 표적수사를 당하다가 찢겨지기일 수이니까.
6. 완벽한 세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남을 판단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나, 남을 보호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사람들이 조금더 완벽에 가까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세상을 정의롭게 만든다. 하지만, 어려서 부터 돈을 버는 게 최고의 가치로 알고 여러가지 편법을 동원하녀 그자리에 올라가 그것을 유지하고싶은 사람들이 남을 정의롭게 보호하려고 하거나, 남을 정의롭게 판단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 아닐까? 우리는 그리 정의롭지 못한 세상속에 살고 있으며, 그러기에 정의를 찾기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감수해야만 한다.
7. 늘 하는 말이지만, 언론이든 , 법조계이든, 정치인이든, 교육이든, 존재 목적이 '정의' 인 어느 한 단체만 정의로우면 세상은 꽤나 많이 정의롭꺼나, 정의로와 질텐데, 하나같이 썩어있으니....이런영화를 보며, 시티오브갓을 볼때처럼 '적어도 우리는 이런세상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아'라는 자위감이라도 생겼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작은 영화속에서 너무 많은 의미를 두었는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 ボクは やってない'라는 가네코의 말이 너무나 내귀에 크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