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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게임, TV, 책 들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제목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스 신화가 필요하므로 쓸데없을지도 모르는 긴 이야기를 적어나가겠다.


1. 저 '성스러운 사슴'은 여신 아르테미스의 소유이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의 대다수에 신, 반신이 그러하듯이 아비를 제우스로 둔, 하지만 어머니는 헤라가 아닌 여신이다. 사냥이나 활 쏘는 것을 즐기는 남자와 타협을 모르는 페미니스트 여신이다. 그런 그녀의 성스러운 숲에 아가멤논이라는 미케네의 왕이 들어와 성스러운 사슴을 사냥한다.
2. 아가멤논은 동생 메넬라오스를 도와 트로이와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아르테미스가 사슴죽인 것 때문에 저주를 받아 바람이 불지 않고 전염병이 돌아 전쟁이 늦어지고 있었다.
3. 그래서 원인을 알아보니 아르테미스의 저주 때문이고 그 저주를 풀려면 자신의 딸을 바쳐야 한단다. 그래서 딸을 제물로 받쳐 전쟁에 참여한다.
4. 전쟁은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고 10년동안 지속된다.
5. 전쟁은 다 알고 있듯이 아킬레스, 헥토르의 영웅적인 싸움 때문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목마를 철옹성 안에 들여놓음으로써 트로이의 패배로 끝난다. 즉 아가멤논 측(그리스)이 이긴다. 그리고 딸을 죽여 놓고 참여한 전쟁에서 예쁜 공주, 카산드라를 전리품으로 데리고 집에 온다.
6. 집에오니 본처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라는 정부와 함께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복수로 아가멤논과 카산드라를 죽인다.
7. 이후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또 다른 아들, 딸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가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엄마와 엄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인다.

이런 것을 비극이라고 하나? 요새는 막장 콩가루라고 하지 않나?

1. 아르테미스는 지 사슴을 죽인 게 기분 나쁘면 아가멤논을 죽이면 되지 왜 멀쩡한 딸을 죽이라는 거지? - 사실 이건 영화에서 변주된다. 너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서 그 고통을 느끼라는 것이다. 그게 복수란다. 좋다. 그럼 이피게네이아의 입장에서 보자. 아빠가 죄를 지었고 아빠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좋은데 왜 내가 죽어야 하지?
2. 딸을 죽이라는데 안 죽이고 전쟁 안 나가면 되지 그깟 동생의 치정 싸움에 뭐하러 딸까지 죽여가면 전쟁에 나가냐 하는 것인가? 전쟁은 치정 싸움이 아니고 지가 나가고 싶어 안달 난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지가 영웅이 되고 싶어서 나간 싸움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어디 카산드라 같은 여인이나 하나 주워오려고 그런 거지.)
3. 본처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진짜로 자신의 딸 복수한 거 맞나? 자신의 딸 복수 30% 자기와 자기의 정부랑 잘 먹고 잘살라고 죽인 거 70% 인 듯한데? 딸의 복수는 명분이었겠지.
4. 그렇다고 아들, 딸이 엄마를 죽일 건 뭐냐. 아이기스토스나 잡아 족치고 엄마는 '살려는' 드려야지.

영화로 가자.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심장 전문의(주인공)가 한 소년에게 질질 끌려다닌다. 소년은 정말 불편하다. 어눌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그러하고, 표정이나 구부정한 자세도 그러하다. 카메라는 광각으로 이 느낌을 증폭시키고, 사운드는 기괴한 사운드로 이 느낌을 증폭시킨다. 포크로 스테인리스 스틸 냄비를 벅벅 긁는 느낌이다. 저런 애를 왜 만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소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신 같은 아이는 아르테미스신과 같은 이상한 논리로 주인공 가족을 파괴하려 한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이해하는 것보다는 그저 복종하고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를 보고 느끼는 생각은 신화를 보고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 복수란 것은 무엇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가 가능한 것인가?

PS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면 난 내가 죽겠다. 내 실수 때문에 아내, 아들, 딸이 죽는 것도 열 받는데 내가 죽여야 한다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 상황이 되면 자신도 자신을 죽이겠단다. 남편 놈 실수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애들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낳으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