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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결국 이영화를 보았다.



감독이 나와 비슷한 학번, 그리고 건축과, 그시대를 자극하는 감성의 영화. 어찌 이영화를 보고 그냥 지날 칠 수 있었겠는가?

내게 그리 멋진 첫사랑이 있지도 않았고, 건축이라는 학문을 좋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멋진 대학 동아리 생활을 하지도 았았지만, 그저 처절하게 아웃사이더였던 사람이지만 20년전이 그립다. 그 때는 그런 내 청춘이 언젠가 가겠지라고 노래했지마는 지금은 그 지겨웠던 스무살적이 그립다. 돌아가고 싶다.


영화는 이런 시대적인 감성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하지만, 스토리는 더욱 볼만하고 잘그려져있다. 사람이 많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는듯.


몇가지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장면들. 스포일러 만땅 뭐 이미 한물간 영화니 큰상관 없겠지만....




1. 처음에 서연을 다시만나는 장면에서 승민은 서연을 몰라본다. 지나고보니 몰라본 척한 것이다. 6개월동안을 그리 지독하게 사랑하고, 결국 그리 못이룬 사랑을 잊을 수 있는 남자는 흔치 않다(적어도 승민이 같은 성격에). 하지만 승민은 서연에게 초연하고 싶다. 고백한적도 없고, 자신의 마음을 들켰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썅년이니까.


2. 서연은 썅년 맞다. 정릉의 작은 집에서 사는 짝퉁 게스를 입은 순수한 승민에게 자신은 부자인 재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의사와 수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위자료를 한푼이라도 더뜯어내기위해 버티고 버티는 그런여자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승민의 순수함이 그리웠을지도. 자신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15년전 집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그 뻔뻔함이 썅년이 아니면 뭔가?


3. 은채는 서연이 승민의 첫사랑인 것을 알았다. 왜 둘이 결혼할 사실을 서연이 꼭알아야 하는가? 그리고 승민의 첫사랑이 썅년인것을 알려주는가? 여자의 눈썰미는 정말 무섭다. 서연은 은채의 이 두마디로 넥타이를 고이 접어둔다. 


4. 정릉에서 개포동가는 버스는 당시 710번이었다. 이버스가 사실 서울에서 안가는 데가 없었다. 고속터미널,  압구정동을 해서 종로...아마도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있는 듯하다. 영화속에는 90년대 강남 강북의 이야기 그리고 건축의 이야기가 잘 들어가 있다.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사는 선배형 재욱. 정릉의 작은 집에서 사는 승민, 제주도에서 올라와 정릉의 아는사람집에서 사는 서연. 둘이 만나는 정릉의 빈집. 독립하여 강남의 반지하로 가는 서연. 그리고 헤어짐. 제주도의 아버지집.


5. 건축은 '공간'의 학문이다. 난 그 무형의 공간보다는 유형의 구조를 공부한 사람이긴 하지만. 정릉의 빈집은 제주도의 집은 15년을 거친 둘사이의 첫사랑에 대한 공간이다. 알고보면, 썅년이었던 서연이 당차게 들어선 공간이고, 깨끗하게 정리한 공간이며, 예쁘게 씨를 뿌려둔 공간이다. 승민이는 그져 찌질대기만 하다 놓쳐버린 곳이기도 하고. 15년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공간을 찾아냈고 이번에는 이 공간을 꾸며 줄 것을 의뢰한다. 여전히 승민은 찌질댄다. 이여자가 나를 사랑했구나를 이야기 해줘야 그제서야 알 수 있는 상찌질이이다.


6. 남성취향의 영화라고 한다. 남자는 첫사랑을 평생간직하는데 여자는 그렇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서연입장에서좀 생각해보자. 된장스럽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그게 다 부질 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재료가 무엇인지 모르게 맵기만한 매운탕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그래서 첫눈오는날 CD플레이어를 놓고 떠났던 15년전을 추억한다. 힘들게 얻어낸 위자료로 아버지 집을 15년 전 약속으로 고치고 싶어 그를 찾는다. 그에게서 사랑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긴 그는 시작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인정받고 싶다. 15년전 그와 나눈 것이 서로에게 잊혀질 수 없는 추억이었음을...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가졌고 웃을 수 있다.


7. 난 첫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때 같은 반아이를 좋아하던 것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애의 머리칼, 입술. 미소. 모든 것이 생생하다. 짝사랑이었지만, 난 열병을 알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건 첫사랑이 아닌가?   그 이후로도 정말 많은 여자를 '사랑'했었다. 어릴적에는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다. 누구를 만나야 난 첫사랑을 만났다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8. 이루어 지지 못했기때문에 기억나는 것이고 아쉬워 지는 것이다. 그때 더 진행이 되었다면, 이제 3류 영화가 되고, 사랑과 전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지 못했기때문에 우리는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9. 그래도,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젊음이 그립다.